Keith Bontrager : 신뢰, 그 이상의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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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30일간의 보증, 그 안에 날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자신감. 제품은 엄청 가벼운데, 라이더의 무게 제한이 없는 카본 기술의 대범함. 본트래거 제품 안에서는 블렌더 시스템으로 자유롭게 호환되도록 하는 온화함. 사고나서 부서진 헬멧은,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맙다며 새 헬멧으로 바꿔주는 자상함.

이렇게 본트래거와 함께한지 1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이제서야 이 브랜드에 대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사람의 히스토리를 알 필요도 없이 제품력으로 랩방앗간과 참새들을 만족시켰던 본트래거는, 이미 브랜드파워가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이런 글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눈에 반한 상대도 같이 살아가면서 알게 되는 오래전 이야기가 있고, 이미 사랑하는 이에게도 궁금한 것들이 생기듯, 그의 히스토리를 알고 싶어하는 참새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국내 자료를 찾아봐도 본트래거라는 사람에 대해 자세히 다룬 내용은 거의 없었고, 있어도 짧은 요약이 전부였기에 본트래거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해외 자료에서 가져왔다. 본트래거는 현재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가장 최근까지도 그에 대한 인터뷰가 많아, 자료를 찾는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놀라웠던건 이이를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아직도 많다는 것. 그리고 그가 남긴 업적이 지금도 높게 평가되고 있다는 것.

자- 그럼, Keith Bontrager에 대해 알아볼까!
(하기는 1번과 2번, 두 개의 인터뷰를 의역하여 엮었습니다.)

1. 기고 https://www.adventure-journal.com/2015/03/behind-the-cult-of-bontrager/
2. 인터뷰 http://dirtragmag.com/physics-and-dumpster-diving-interview-keith-bontrager/
3. 사진 http://www.bikeradar.com/mtb/gear/article/keith-bontrager-interview-six-things-we-learned-46802/
4. 사진
http://theradavist.com/2013/07/event-recap-ask-a-founder-with-keith-bontrager-at-mission-workshop/#1

1. Bontrager Race Lite Frame

지금 바로 이 순간, 어떤 이가 22년된 산악자전거 프레임을 $700에 이베이에서 팔고 있다. 프레임에 상처도 많아서 A급 매물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켈란젤로의 예술작품도 아닌데도 이 프레임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물상에서 주웠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말이다. 그 프레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줄 세공이 있는 것도 아닌데다, 우주항공소재로 만든 것도 아니다. 녹도 왕창 슬어있다. 그냥 라스타컬러의 스틸 프레임.

왜 사람들은 폐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이 프레임에 대해 가격을 지불하려 하는 것일까. 이유는 바로, 이 프레임이 본트래거의 Race Lite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수년 동안 이 프레임은 지구상의 산악 프레임 중, 가장 세련되고 정교한 프레임이었다. 단순히 설계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다른 프레임이 따랐던 전통에 저항하고 다른 방식을 시도했고, 그 새로운 방식을 찬양하는 추종자가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프레임이었기 때문이다.

키스 본트래거가 첫 프레임을 만들었던 1979년에는 이탈리아스러운 프레임을 만들어야지만 돈이 됐다. 그게 트랜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트래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내가 직접 만든다"는 생각으로 물건을 보면 분해하려 들었고, 언제나 더 나은 것으로 변형시키려 하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유별난 아이였다. 빨래 건조기를 로켓선으로 바꾸려고 뚝딱뚝딱 땜질을 하더니, 열두 살이 되었을 때는 잔디깎는기계를 동력으로 사용하는 작은 오토바이를 만들어냈다. 이 꼬맹이가 어떤 배경지식이 있었겠는가. 누군가에게 배우지도 않았는데 창고에서 혼자 이런 일을 즐겨했다. 그러더니 10대 중반쯤 되었을 땐, 본트래거보다 나이 많은 형들이 이 꼬맹이를 "본트래거 프로페서"라 불렀다. 그가 직접 만든 것으로 레이스도 했고, 그걸 다시 수리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해 설계하고, 점점 모터사이클 분야에서 그는 절대적 경지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아무래도 속도를 내는 장르이다보니, 그는 모터사이클로 인해 다치는 것을 많이 보게 되었다. 그래서 모터사이클을 만들 때 썼던 지식을 바탕으로 자전거를 만드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촌 형의 창고에서 프레임 빌딩을 하기 시작했다. 로드 프레임도 만들고, 트랙용, 탠덤, 산악 프레임까지 만들었다. 그가 만든 프레임은 품질이 좋다는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순식간에 또 유명인이 되었다. 덧붙이자면 캘리포니아의 산타크루즈에서 기술을 가지고 유명인이 되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촌구석 창고에서 남들이 안 만드는거 만들면 유명해지는거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산타크루즈에는 엄청 빠르기로 유명한 스타급 라이더들이 많았고, 신상 프레임이나 부품도 다양하게 많이 유입되던 지역이었다.
만약 누군가가 이곳에서 프레임 빌더로 살아남으려 한다면, 엄청 가볍게 만들어야함은 물론이거니와, 방탄이 될만큼 강성과 내구성이 좋아야 할 것이다.


Race Lite : 1.8kg의 스틸 프레임이고, 산타크루즈에서 손으로 빌딩했다.
방탄이 될만큼 강하며, 당시의 다른 프레임보다 수년 앞서있었고, 결정적인 혁신이 담겨있다해도 과언이 아닌 프레임.


"그 당시의 나는, 주로 프레임을 왕창 부셔먹는 사람들을 위해서 프레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의 나는, 어떻게 하면 이 프레임이 부서지지 않게 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을 끊임 없이 찾았고, 그렇게 만든 프레임을 산업적으로 탄생시켰다고 보면 된다."
- 2013년, 샌프란시스코의 미션워크샵에서 열린 Ask A Founder 포럼에서


'Ask A Founder' at Mission Workshop in California

2. 인습타파주의자

본트래거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했고, 프레임을 빌딩하는데에 그가 대학에서 공부했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그가 산악프레임을 만들던 초창기에는, 다른 산악프레임들도 거의 로드바이크의 제작 기술을 주로 이용했었다고 한다. 이런 것들 하나하나를 되짚어보며 '늘 하던 인습을 타파'해야 한다고 여겼다.
누구나 했던 것을 하지 않기 위해 가장 처음으로 했던 일이, 바로 다운튜브를 만들 튜빙을 하나 새로 사서 한번 휘어지게 만들어본것이다. 포크도 휘어지게 만들어봤는데 실제로 더 강해지는 효과가 있었다. 이런 것을 발견하면 그가 만드는 모든 프레임에 적용 시켰다.

다른 프레임이 보통 납땜으로 용접되어있는 것에 반해 본트래거의 프레임은 TIG용접을, 탑튜브와 다운튜브, 체인스테이의 튜빙 교차지점에는 거싯(gusset)을 설치했었다. 프레임의 소재와 형상이 다양하지 않던 시절, 그가 만든 프레임은 비범했다. 그 자체가 혁신이었다. 드라이브사이드 쪽의 체인스테이에는 체인이 빠졌을 때 쉽게 빼내기 위해 플레이트를 설치했고, 시트스테이는 투피스 에이(A)라인으로, 탑튜브에는 슬로핑을 넣었고, 뒷삼각보다 앞삼각이 작았다.

위에 있는 프레임은 지금의 우리가 봤을 때는 별반 특이하지 않고 거슬리는 것이 없는데, 그 당시 사람들의 반응은 '미치광이 과학자가 고등학교 실험실에서 만든 습작'이라 부를만큼 괴상한 형상이었다. 하지만 그가 새롭게 시도했던 것들 대부분을 다른 제조사들이 뒷따라 만들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본트래거 프레임은 다른 것보다 매우 가벼웠고, 많이 튼튼하고 강력했기 때문이다.

3. Race Lite와 작별

본트래거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안타까운 점도 많았다.
1980년대가 스틸 하드테일 시대라고 한다면, 90년대는 다양한 소재가 출현했던 춘추전국시대였다. 소비자들은 카본 러그 프레임이나 뚱뚱한 알루미늄 튜빙 제품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기술적인 견해에서 보자면, 본트래거의 Race Lite 스틸 프레임이 이런 프레임보다 약간 앞서있었지만, 일반적인 대중에게는 와닿지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본트래거는 다른 큰 브랜드처럼 자신의 기술력을 광고하는 것도 꺼려했다.
시대가 새로운 소재로 변하고 있는 과정에서도 그는 스틸 튜빙을 선호했고, 신소재에 열광하지도 않았다. 심지어는 보통 많이 사용하는 네이밍, 멋지구리한 알파벳 약자를 사용하는 것도 싫어했다고 한다.

그 당시 그는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다. '좋은 자전거와 부품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자전거 부속은 공구와도 같다. 이건 유행이 아니다', '강한 것과 가벼운 것, 그리고 저렴한 것. 이 세 가지 중에서는 두 개만 고를 수 있다. 강하면서도 저렴한 것, 가벼우면서도 저렴한 것은 있지만, 강하고 가볍고 저렴한 것은 없다'.

그가 만들었던 Race Lite 프레임은 높은 품질의 스틸 프레임이었고, 생각보다 세심한 공정을 필요로 했기에 실제로도 가격이 높았다.

그럼 왜 그의 자전거는 사라지게 되었을까?

한때 스틸 하드테일 장르의 중심부에 있던, 그 신비로운 본트래거 프레임은 하루 아침에 없어졌다.
1995년, 트렉이 본트래거를 인수하면서 그의 자전거를 계속 생산하고 판매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본트래거 프레임은 당시 트렉의 자전거 생산 라인에서 만들어내기에도 가장 고가의 제작 방식이 필요했었다고 한다. 새로운 소재와 생산 방식에 열광하는 대중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데, 그의 프레임을 어렵게 생산할 필요가 없었기에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Race Lite는 바로 산타크루즈(Santa Cruz Bicycle)에 넘어갔고, 그곳에서 산타크루즈 이름을 달고 생산을 지속했다. :)

어떻게 보면, 이베이에서 $700에 거래되는 그 프레임에 열광하는 이들은, 본트래거의 젊은날, 패기 넘쳤던 작품성을 인정하며, 옛날을 추억하는 이들일 것이다. 

4. 그럼 이제 궁금한 걸 물을 차례
Keith Bontrager의 성姓은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자전거와 부속에 표기되어있고, 트렉과 사업 파트너로서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모터사이클 레이서였고, 자전거 시장의 판도를 쥐고 흔들었던 인물이었으며, 그 변화를 주도했던 본트래거. 1980년대의 산악자전거와 서스펜션을 발전시키는데에 이바지한 인물이다.

Q. 가볍고 튼튼한 산악자전거용 휠을 만들려고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살았다고 들었다. 그 시기에 대해 말해줄 수 있나?
A. 내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의 바로 옆에 스페셜라이즈드 본사가 있었다. 거기에서 종종 빌딩에 필요한 콜럼부스 튜빙을 구입하곤 했다. 스페셜라이즈드 본사 사람이 종종 나에게 유럽 브랜드의 로드 림을 나눠주기도 했다. 수퍼 챔피언 림, 리지다 림, 마빅 림 등. 그것들 중 일부는 사용하지 않고 내가 다시 돌려주기도 했다. 왜냐면 불량이었기 때문에. 내가 그들한테 림을 돌려주면, 그들은 그걸 바로, 쓰레기를 산처럼 쌓아놓은 곳에 버렸다. 큰 브랜드들은 second sales를 할 시간이 없다. 그냥 버리는게 시간이나 돈을 생각하면 더 낫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나는 쓰레기더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친한 사람 중 하나가 그 고물 더미에서 쓸만한 물건을 가져왔는데, 나는 그 친구에게 림 하나에 $1 돈을 주고 사곤 했다. 그러면서 나도 산더미처럼 쌓인 고물더미에도 쓸 수 있는게 있다는 것을 알게됐고, 그 부근을 지날때마다 쓸만한 것이 있는지 확인하러 멈춰서곤 했다.
실제로 일반 사람들이 쓸 수 있는 것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나처럼 가난한 프레임빌더에게는 좋은 재료가 꽤 있었다.

쓰레기더미를 뒤적거리다가, 나는 품질 불량의 제품을 쳐다보면서 그당시의 많은 림이 잘못된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다는걸 발견했다. 휠을 직접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측정하고 계산하는 작업 없이 바이스랑 톱을 사용해서 무작정 잘라봤다. 모든 스포크 간격의 차이가 줄어들 때까지 약간 림을 구부렸다. 성공했다. 우리 지역의 제일 빠른 라이더였던 Mark Michel이, 표면도 뭉글뭉글해서 완벽하지 않은 그 림을 경기에 가지고 나갔다. 그에게 전화가 왔다. '림이 아주 마음에 든다. 더 완벽하게 개선해줬으면 좋겠다'.

Q. 트렉과는 어떻게 같이 일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A. 어느 날 John Burke가 물었다. 트렉을 위해 부품을 설계해 줄 수 있느냐고. 물론 나는 좋다고 말했다.
그 당시 본트래거싸이클의 비즈니스는 성공궤도 위에 있었다. 누가 봐도 흥행하고 있었고, 하루가 다르게 급속도로 성장했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너무 빠르게 성장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이 되니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나와 함께 일하던 동업자도 떠났고, 그 이후 나는 한주에 80시간씩 일을 해도 부족했다. 일에 지쳐갔고, 그렇게 일을 하니 완벽하게 해낼 수도 없었다. 일을 잘 수행할 수 없게 되니, 돈을 충분히 벌지도 못하는 지경이었다. 이렇게 힘든 시기를 지내며, 나도 내가 잘 하는 것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먼저 트렉에게 '내 회사에 투자하는 조건으로 회사의 일부를 가져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고, 그 당시 막혀있던 자금을 해소할 수 있을 정도로 도움을 받았다. 그러던 중 John의 아버지인 Richard가 '트렉이 본트래거 사이클 전체를 사들이는 것'이 어떤지 John과 나에게 제안했다. John은 이런 방향은 애초에 생각치 않았었다고 했고, 나도 그 상황에서 고민을 많이 했다. 내가 봤을 때 Richard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미치도록 똑똑한 이 사람 덕분에 나는 그 자리에서 제안을 받아들였다.

트렉이 본트래거를 인수하는 절차는 거의 한 달 정도 걸렸다. 나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비즈니스적으로는 소질이 없기에 이렇게 결정을 내린 것이 앞으로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데에, 나는 참 운이 좋았던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만약 트렉이 본트래거를 인수하지 않았다면, 본트래거 비즈니스가 지금까지 계속 진행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Q. 트렉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A.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애매하다. 왜냐면 아주 다양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 전반적으로, 엔지니어링에 관한 것들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까.
집에 있을 때는 보통 이렇게 지낸다 : 침대에서 눈 뜨면, 고양이한테 소리지르고 아주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가축들에게 먹이를 주고, 정원에 물도 주고, 그리고 나서 뭔가 먹을걸 찾아 먹는다. 그후에 이메일을 확인하고 잠깐 업무를 보고, 자전거를 조금 손보고, 라이딩을 나가거나 언덕으로 러닝을 다녀온다. 집에 돌아오면 다시 이메일을 체크하고 정원에서 채소나 과일을 수확하고, 요리하고, (맥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는다. 다시 고양이들한테 소리지르고 침대로 간다. 그야말로 평범한 일상이다.

하지만 일년의 반 정도는 출장을 다닌다. 이 기간 동안에는 출장지역에서 라이딩을 하기도 하고, 레이스에 참여하기도 하고, 대리점이나 매거진들과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우리가 스폰하는 경기의 프로팀을 관람하기도 하고,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하기도 한다. 자전거로 인해 알게된 사람들과 즐겁게 놀기도 한다.
이 기간에는 내가 보내는 모든 순간이, 어떻게 보면 제품개발, 제품PR과 맞닿아있다. 정신 없는 일정처럼 보이겠지만 이제는 이런 일상이 익숙하다.


Q. 앞으로 자전거의 기술은 어떻게 변할까?
A. 요즘 기술력과 제조 공법은 자전거를 점점 더 가볍게, 그리고 강하게, 또는 그 이상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있다. 프레임과 부품에 새로운 카본컴포지트 응용기술이 사용되는 것이 주 원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냥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컴포지트 응용 기술 때문에 자전거 가격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 어느 경지에 오르면 값비싼 자전거의 가격만큼 그 제품의 퍼포먼스가 안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로 치솟는 가격보다 퍼포먼스 체감은 미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중저가에서는 날이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로 인해 합리적인 가격의 고품질 제품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제조공법과 원자재를 다루는 기술이 향상되는 것이 좋은 품질의 자전거를 만드는 일을 더 수월하게 해줄 것이며, 자전거의 평균적인 퍼포먼스를 올릴 것이다.

아직도 본트래거라는 이름을 걸고 제품을 출시하고 있기에 사람들은 내가 기술 향상에 목을 맬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기술향상이 최우선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개발한 기술로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좋은 영향을 미친다면, 이것 또한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네 엔지니어들 사이의 기술향상은, 예를 들면 디레일러를 효율적으로 대체할 그 무언가를 개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비슷한 뉘앙스지만 조금 다른 맥락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기술향상은, 우리가 만드는 기술이 자전거에 열광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아닌, 매일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이용하는 대중에게 어떻게 향상된 기술을 전파할 것인가이다. 이 문제 또한 단순하지 않다. 카본을 쉽게 공급하는 것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경제, 사회, 심리, 정치적인 요소들이 있다. 해결하려든다면 어마어마한 산을 넘어야 할 것이다.

5. 본트래거와 함께한 15개월

랩에 처음으로 본트래거 제품이 입성했을 때, 두 주인보다 참새들이 더 반겼다.
업계 특성상, 스페셜라이즈드를 곁에 두면 트렉을 가까이 할 수 없는 환경 요인 때문에 업계에서 10년 가까이 지내온 사장1도 그렇고, 스페셜라이즈드코리아에 재직했던 사장2도 그렇고, 둘 다 본트래거는 데면데면했다. 큰 브랜드인 트렉이야 안 찾아봐도 눈에 보이니 꾸준히 지켜봤지만, 본트래거야 그간 아예 안중에도 없었는데, 오히려 참새들이 쌍수 들고 환영하더라.

'아- 드디어 랩에서도 이온을 살 수 있네요.'
'패러다임 안장이 진리죠.'
'XXX가 최고에요.'
'카본인데 라이더 무게제한이 없잖아요. 경량인데 웨잇리밋이 없다구요!'
'아이소코어 핸들바- 이게 물건인데!'

본트래거 취급 안하던 날들에는 이 애정을 어떻게 숨겼는지 궁금할 정도로, 다들 본트래거 팬심, 부심을 표출했다.

두 주인도 얼마 지나지 않아 본트래거 팬이 됐다. '이렇게 믿음직한 브랜드가 다 있나' 싶었다.
본트래거 모든 라이트는 물리는 지점이 다 똑같은 네모라서 어떤 본트래거 마운트에도 다 들어맞는다. 간결해서 마음에 든다. 본트래거 신발은 고가 라인이나, 중저가 라인이나 다 똑같은 상급 보아 다이얼을 사용한다. 하긴- 상급다이얼 쓴다고 20만원짜리 신발이 40만원짜리 신발로 바뀌는게 아니니까.
아찔한 사고를 겪은 라이더는 랩이 다독여주기 전에, 본트래거가 먼저 '무사히 돌아와줘서 고맙다'며 새 헬멧으로 바꿔주고, 30일 안에 본트래거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며 자신만만한 개런티도 한다.

이미 구구절절 이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글로 쓰지 않아도, 제품으로 신뢰를 얻고 있기에 이 사람에 대해 쓴 이 글이 사실은 별로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쩌나-
이미 마음이 동해서, 모든걸 속속들이 알고 싶었는걸.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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