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er's Review]스틸, 토막예찬 | 왜 나는 스틸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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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지지 말지어다

왜 스틸을 타야 하는지에 대해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유를 대는 순간, 당신은 이미 졌다.
스틸, 크로몰리, 알루미늄, 티탄, 카본까지 현재 자전거로 만들 수 있는 모든 소재를 통틀어서, 성능으로 카본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스틸은 카본보다 비싸지 않다는 둥, 커스텀 지오메트리나 내 마음대로 엿가락처럼 파이프를 늘릴 수 있다는 둥, 생각보다 무겁지 않다는 둥, 승차감이 좋다는 둥- 고르고 골라서 냉정하게 사실만을 말하려고 노력한다고 해도, 상대를 설득하려고 한 그 순간부터 당신은 이미 진 거다.

쉿- 그러니 이건, 우리끼리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스틸은 합리적인 이유로 접근해서는 절대 사랑하게 될 수 없지 않나.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우리가 언제 그딴 이유들로 스틸을 탔는지 말이다. 천만 원이 뭐람- 그 이상을 호가하는 자전거도 여러 대 가지고 있지만, 그중에서 철자전거가 제일 정이 가고, 계속 타고 싶다는 걸 어찌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 말이다. 심지어 내 철자전거의 가격은 치장하다 보니 점점 가격이 높아져 웬만한 퍼포먼스 카본차보다 비싸기까지 하다.

이를테면 아래 상황과 같을 수 있다.
"나는 이제 그녀의 말에서 통찰이나 유머를 찾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녀가 말하는 모든 일화를 쫓아 들어갈 준비가 되어 있었고, 정곡을 찌르지 못하는 그녀의 모든 농담을, 실마리를 놓치곤 하는 모든 사유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알랭 드 보통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의 한 대목처럼 우리는 이 프레임의 모든 사유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1. 스틸은 추억이다

어렸을 때 탔던 로드가 한 대 있었는데, 아직도 가지고 있다. 물론 이젠 맞는 부속이 없어서 그 부품을 구하려면 스램 AXS 그룹셋을 사는 금액만큼 나올지도 모르고, 몇 개월 몇 년 이베이에 죽치고 앉아서 매물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언젠가는 다시 고쳐서 탈 마음으로, 어린 시절의 애마를 가지고 있다. 그때는 이게 스틸인지 뭔지 알지도 못하고 탔지만, 제주 바닷가 꼬맹이에겐 빨간 포르쉐였달까.
미캐닉조에게 스틸은 추억이다.


2. 모든 불안요소를 잠재운다

제일 좋은 것은 스틸 특유의 승차감인데, 이 기분 좋은 찰랑거림은 말해봐야 입 아프다. 이 사람이 필생의 사랑이라 말하려면 살아봐야 아는 거 아닐까. 안 살아본 사람이랑은 승차감 이야기를 해봐야 소귀에 경읽는 꼴일 거다.
그러니 이것 말고, 한 가지 이유를 더 붙이자면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그것이 크게 잘 되기를 바라기보다, 크게 잘못되지 않기를 바라는 타입이다. 내가 스틸을 가지고 밖을 나갈 때는, 이것이 타고 싶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그날따라 불안한 요소가 많을 때 가지고 나간다. 무사히 일정을 마치면, 그 시간은 재미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고, 바닥에 깔리면서 기분 좋게 찰랑거렸던 고급스러운 주행 느낌은 코스에 대한 기억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미스터Ban에게 스틸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편안한 대지다.




Designed In London. Hand Made In Italy.



콘도르르르- 독수리



A Condor




3. 콘돌

작년에 70주년을 맞이한 콘돌은, 콘도르, 런던, 이탈리아, 라파, 브래들리 위긴스... 그리고 스틸이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너무도 전통이 깊은 브랜드라서, 서술하자면 하염없이 길어질 것 같아, 방금 언급한 키워드별로 정리해보았다.



콘도르 | 사진출처 : © QA International2012


콘도르 :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가지고 있는 육식성 새를 맹금류라 하는데, 맹금류는 조류의 먹이사슬 중에서는 최강자이다. 독수리, 매, 부엉이, 올빼미가 이에 속하고 콘도르는 맹금류 중 가장 거대하기로 알려져있다.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살다보니 세균감염에 대한 면역성이 진화되어 지금의 못생긴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한다. 신대륙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 콘도르도 인류에게 첫 모습을 나타냈다. 거대한 몸집으로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늘과 땅을 군림하는 콘도르는 예나 지금이나 '새롭고 신비한 존재'로 상징되곤 한다. 




런던 :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8년에 시작한 콘돌은, 처음에 브랜드로 시작한 것이 아니다. 런던, 그레이 인 로드(Gray's Inn Road)의 자전거 가게 이름이었다. 콘돌싸이클샵은 직접 프레임을 빌딩하는 샵, 커스텀으로 휠을 빌딩해주는 샵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래서 싸이클을 좋아하는 많은 셀럽들이 몬티 영(Monty Young : 콘돌 창립자)이 짜주는 휠을 구입하기 위해 이 매장에 방문했다고 한다. 에릭 클랩튼, 롤링스톤즈의 믹 재거, 심지어 엘리자베스 여왕의 동생인 *마가렛 공주까지도 콘돌 싸이클의 단골 고객이었다고.

*모범적인 생활로 국민의 우상이 되었던 언니와 달리, 가십거리와 파격적인 행보로 유명했던 영국의 왕녀이다. 제이슨 스테덤 주연의 영화 '뱅크잡'에서도 마가렛 공주의 문란한 생활이 영화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이런 파격적이고 문란한 생활 때문에 유명하기도 했지만, 그 반면으로는 패션센스가 돋보이고, 당시 시대상과는 다르게 자유로운 생활을 표출하여 젊은 층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셀럽이기도 하다.

런던에서 시작한 콘돌은 딱 두 번 이사했었다. 처음 창업했던 자리에서 1960년경 인근으로 한 번 이사했고, 1980년 경에 다시 처음의 장소로 돌아왔다. 오랜 역사에 더해 같은 (비슷한) 장소에서 수십 년을 지내다보니, 영국 현지에서는 자연스럽게 자전거업계의 허브가 되었다. 콘돌의 공식홈페이지를 들어가보면 콘돌 페이지인데 다른 브랜드 제품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런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라파의 창업자인 사이먼(Simon Mottram)이 처음 만들었던 라파의 샘플 의류 판매를 위탁한 곳이 콘돌사이클 매장이었으며, 브롬톤을 비롯한 다양한 영국, 브랜드들을 판매하는 소매점이자, 콘돌 자사의 브랜드를 제조, 유통하는 기업. 두 마리 토끼를 잘 잡고 있다.



이탈리아 : 분명 영국 브랜드라고 했는데, 프레임 여기저기에 이태리 표식이 있고, 콘돌에는 캄파, 데다(Deda)가 정석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왜 이탈리아가 콘돌의 키워드일까.

처음에는 제작도 공방에서 직접 했지만, 인건비 문제로 꽤 오래전부터 콘돌의 모든 카본, 스틸 프레임 제작을 이탈리아로 옮겼다. 프레임 빌딩은 이탈리아 북부의 한 공방에서 진행하고, 카본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카본메이커인 사르토(Sarto)에서 제작한다. 페인팅까지 전부 이탈리아에서 진행한 후, 영국 런던 남부에 위치한 콘돌사이클의 물류센터로 이동시킨 제품을 다시 한번 미캐닉들이 QC를 진행한 뒤 시중에 판매한다.



(왼쪽) The original Rapha-Condor team at their team launch in 2008. Photo: Gerry McManus



라파 : 컨티넨탈 등급의 'Rapha Condor' UCI 사이클링은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유지되었던 팀이다. 콘돌과 라파가 손을 잡고 합작법인으로 *Rapha Condor Cycling Club을 만들었고, 일본의 Sharp가 재정후원업체로 들어오면서, 한동안은 'Rapha-Condor-Sharp'의 시기를 보냈다. 이후 영국의 재보험사인 JLT(Jardine Lloyd Thompson)와 손을 잡고 'Rapha-Condor-JLT'팀으로 오랜 기간 활동하였다. 이 시기에는 팀킷의 패션센스가 돋보여, 멘인블랙(Men in Black)이란 별명도 얻었다.

*이것은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RCC (Rapha Cycling Club)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라파가 팀 스카이와 손을 잡으며 콘돌과의 동맹관계가 끝났고, 마빅과 1년 짧게 계약했었던 시기 이후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 동안 이탈리아 셀레 로얄 (Selle Royal)의 자회사 페달레드(Pedaled)와 손을 잡고 'JLT-Condor'팀으로 활동하다가 2018년 12월, 해체했다.

영국 사이클계에서 굵직하게 획을 그은, 이렇게 멋진 팀이 해체의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팀의 재정후원사인 JLT가 미국의 유통기업인 Marsh & McLennan에 인수합병되어 모기업의 방침에 따라 스폰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JLT Condor을 비롯하여 One Pro Cycling과 Aqua Blue 등 유수의 영국 사이클링 팀이 해체되는 운명을 맞았는데, 팀스카이가 투르 드 프랑스 우승을 하며 촉발되었던 몇 년간의 영국 사이클링붐이 점차 사그라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으로 볼 수도 있다.





런던의 콘돌사이클 매장에 전시되어있는 브래들리 위긴스의 이전 콘돌프레임



브래들리 위긴스 : 콘돌을 탔던 유명한 선수로는 톰 심슨과 브래들리 위긴스. 카본 프레임이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에는 콘돌 스틸프레임이 투르 드 프랑스에서 우승을 차지하곤 했었다. 그중 브래들리 위긴스가 유소년 사이클 선수 시절 탔던 콘돌 프레임은 아직도 런던 매장에 걸려있다. 그 외에도 라파 모델로 유명했던 나미비아 출신의 영국 사이클 선수 '댄 크레이븐(Dan Craven a.k.a. Danfromnam)과 영국 내셔널 챔피언 출신인 '크리스티안 하우스(Kristian House)', 그리고 영국 사이클계의 형제 선수로 유명한 '다우닝 형제 : 딘 다우닝(Dean Downing), 러셀 다우닝(Russel Downing)이 있었다.
현재 프로 투어팀 중 팀 이네오스(전 팀 스카이)의 벤 스위프트(Ben Swift), 크리스 롤리스(Chris Lawless), 타오 게이건하트(Tao Geogheganhart), 그리고 팀 EF(Education First)의 휴 카시(Hugh Carthy) 등이 Rapha-Condor 팀을 거쳐간 선수다.




(왼) 오- 런던런던 (오) 오- 이딸리아



Condor Super Acciaio Custom Painted




4. 설명하면 지는 건데, 수퍼 아치아이오-

트리플 버티드의 콜럼버스 커스텀 튜빙이고, 55사이즈 기준 1800그램이다. 프레임 무게로는 가벼운 카본들 사이에서 기도 못 펼 정도로 무게가 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이미 예상했겠지만, 콘돌 수퍼 아치아이오의 주행능력은 정말 인상적이다. 프레임 무게나 소재로 봤을 때는 느릿하고 굼뜰 것 같아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예상외로 내가 원하는 모든 곳에서 아주 빠릿하게 반응했다. 콘돌이 늘 외치는 "Race Ready, Performance Steel"이라는 문장이 꽤 적절하다고 느꼈다. 

콘돌이 말하는 '퍼포먼스 튠' 카본 포크도 레이스 스타일의 반응 좋고 승차감 편안한 주행감에 한몫했다. 탑튜브는 직접 손으로 만져보면 부드러운 원형이 아니라 10각형이다. 강성을 올리고 무게를 낮추고 승차감을 올리기 위해 여느 카본/알루미늄 프레임처럼 비원형 튜빙을 만들었다. 콜럼버스社와 협업하여 만든 독특한 규격이다. 그래서 갑자기 가속을 해서 힘을 끌어모을 때나, 다운힐에서 코너를 깊이 파고들 때 날카롭고 안정적이라는 피드백이 주변에 많았다.

그 외에도 스틸이니까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들이 있었다.
자전거에 많은 짐을 실어도 충분히 무게를 지탱하고, 어딘가에 자전거를 싣거나 보관할 때도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는 것. 예를 들면 차량에 자전거를 싣고 투어를 간다든지, 비행기로 해외 원정 투어를 간다는지 할 때 말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좋았던 것은, 프레임 규격이 유별나지 않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부품들과 바로 호환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는 자투리 남은 부속들로 이런 멋진 프레임을 완성시킬 수 있었겠지.


5. 멋부리지 않는 멋

콘돌 스틸 프레임엔 너무 멋부리지 않는 것이 멋이다.
전력으로 맞춘 자전거가 아니라, 여력으로 만들었으니 이곳에는 나의 잉여 부속들을 마음껏 사용했다. 지금부터 나오는 사진의 관람 포인트는, '랩 역사상 가장 혼종', 그리고 '미캐닉조의 끼부리는 솜씨'이다.





6. 역시- 맞춤 제작

콘돌은 70년 전 그 시작과 동일하게, 현재도 커스텀 방식을 운영하고 있다. (기성품 구입과 커스텀 제작 모두 가능하다.)
커스텀은 색상, 지오메트리 모두를 변경할 수 있으며 최소 3주부터 최대 6개월까지 색상과 난이도에 따라 다르다.



구분
영국 현지 가격 (GBP)
국내 가격
소요 기간
비고
바디 색상 변경
200
300,000
10주 (3개월)
스탠다드 컬러칩 기준
포크 색상 변경
100
150,000
10주 (3개월)
스탠다드 컬러칩 기준
색상 변경
프레임 바디와 데칼
300
300,000
~ 500,000
10주 (3개월)
난이도에 따라 상이
지오메트리 변경
200
400,000
10주 ~ 20주
(3개월 ~6개월)
난이도에 따라 상이
풀 커스텀 (컬러, 지오메트리)
450
600,000
20주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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